2017년 7월,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취장암
을 앓던 엄마가 하늘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곧바로 아버지까지 혈액암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내 슬픔은 두 배로 깊어졌다.
2017年7月、私の人生の中で一番悲しい時だった。膵臓癌を患った母が亡くなったからだ。直ぐ後父まで血液癌との診断され病院に入院されると私の悲しみは倍増した。
아빠가 입원했던 병실은 적십자병원1010호, 엄마와 이별한 슬픔을 추스르가도 전에 병실에 틀어박혀 아빠를 간호하려니 끝없는 나락으로 떨아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큰 위로를 받는 걸까. 같은 병실을 쓰던 다섯 명의 환자와 보호자분들 덕에 슬픔은 점점 옅어져갔다.
父が入院された部屋は赤十字病院1010号、母と別れた悲しみを癒す前に 病室に籠り父を看病するので終わりのない奈落に落ちる気分だった。ところがやはり人は人に一番大きな癒されることか。同じ病室の5名の患者と家族の人のおかげで悲しみは少しずつ薄くなっていった。
보호자분들은 딸뺄되는 내게 많은 호의를 베풀어주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주머니가 있다. “힘든 시기는 곧 지나갈 테니 힘내요.” 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던 옆 환자의 보호자 분이었다. 남변 분이 단식을 해야 하는 날에는 식사를 따로 챙겨두었다가 내게 주시곤 했던 고마운 아주머니셨다. 작은 하나까지 신경 써주시는 덕분에 걱정을 재려놓고 잠시나마 그 따뜻한 마음에 기대어 쉴 수 있었다.
家族人々は娘のような私に沢山の好意を施してくれた。中でも一番記憶に残るおばさんがいる。「辛い時は必ず通り過ぎるから力を出して」と温かく慰めてくれた隣の患者の家族だった。ご主人が断食の日には別に食事を用意してくださったありがたいおばさんだった。 少しの事まで神経を使ってくださったお陰で心配を 暫しその温かい心に寄りかかり休むことができた。
한번은 아빠가 “아주머니께 들으니 통핮 간병간호 병실이라는 게 있다는 구나. 간호사가 간병하는 병실이라 거기로 옮기면 내가 덜 힘들 거라고 하셨어” 라는 말을 전하셨다. 입실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병실을 옮길 수 없었지만 아주머니의 마음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아주머니를 비롯해 병실에서 함께 지낸 분들 모두가 친절히 대해주신 덕분에 10개월이란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一度は父が「おばさんに聞くと統合介護室というのがあるそうだ」看護士が見守る病室でそこに移れば私があまり疲れないと言われた。」入室条件に該当しない病室に移ることができないがおばさんの気持ちだけでも慰めになった。おばさんをはじめ病室で一緒に過ごす方達が親切に接してくださるお陰で10か月という時間を耐えることができた。
아빠가 요양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1010호 분들께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힘든 치료를 견디면서도 따뜻한 인정을 베풀어주셨던 그분들의 마음을 기억한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어준 고마운 1010호 분들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父が療養所に移ることになり1010号室の方達に名残惜しい別れを告げた。 しかし今も辛い治療に耐えながらも温かい人情を施してくださった方たちの気持ちを覚えている。一番つらい時期に力になってくれた1010号室の方達をこれからも忘れず生きていかれる。
신 미리